
스웨덴 유학생과 함께하는 생생한 북유럽 스토리_vol.8
+글 스칸딕프라자
+글 사진 스웨덴 유학생_ 수진님
스칸딕프라자에서는 2018년부터
특정 주제를 가지고 스웨덴 유학생으로부터
현지 소식을 전달받아
생생한 북유럽 스토리
포스팅을 진행중입니다:)
2019년 첫 주제로는 북유럽 실생활에서 보이는
식품 패키지에 대해 다루어보았습니다.
‘스웨덴’하면 사람들은 으레 ‘복지’, ‘이케아(IKEA)’, ‘평등’과 같은 키워드를 떠올리곤 한다. 4년 전 교환학기를 포함해서 스웨덴 거주 약 2년차에 접어든 지금, 스웨덴과 연관된 키워드가 왜 지금의 자연스러운 수식어가 되었는지 생활 속에서 느끼고 있다. 잠시 머물다 가는 유학생 신분이지만 학생의 권리로 제공받을 수 있는 기본적인 복지 혜택을 받고 있고, 기숙사 방을 비롯해 눈에 닿는 모든 곳에 이케아의 가구들이 놓여 있으며, 성(gender)뿐만 아닌 사회 전반의 요소들에 있어 평등의 가치를 실현시키고자 하는 스웨덴의 노력을 직접 목격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웨덴의 이런 가치를 인정하듯 한국에서도 ‘스웨덴’ 혹은 ‘북유럽’과 관련된 키워드가 최근 들어 부쩍 늘어난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인테리어 혹은 가구 디자인과 관련된 분야에서는 ‘북유럽’이라는 키워드가 붙은 상품의 인기가 늘 상위권에 머무르는 것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이케아만 봐도 알 수 있듯 스웨덴 특유의 모던하고 실용적인 가구 혹은 인테리어 디자인이 매력적인 것은 사실이지만, 내가 일상의 작은 순간들에서 심심찮게 ‘와’ 하고 감탄하는 순간은 따로 있다. 바로 장바구니에서 접하는 다양한 식품 제품 디자인들을 마주했을 때이다.
▲ 튜브 형태의 스프레드가 익숙하지 않았던 나에게, 디자인 만으로 눈길을 끌었던 칼레스 (Kalles) 제품. 간단한 오픈 샌드위치로 식사를 즐겨 하는 스웨덴에서 빠질 수 없는 제품 중 하나이다.
처음 그 매력을 알게 된 것은 단연 귀리 음료 브랜드 오틀리(Oatly)를 통해서라고 할 수 있다. 4년 전 교환학생 신분으로 처음 스웨덴에 왔을 때 우유가 아닌 ‘식물성 대체 음료’조차 생소했던 내가 선뜻 귀리음료에 손을 뻗을 수 있었던 것은 오틀리만의 위트 있는 패키징의 역할이 컸다. 제품에 대한 복잡한 설명, 혹은 시선을 분산시키는 과도한 디자인 없이 브랜드 명 자체가 ‘나는 귀리우유다’라고 떡 하니 말 하고 있는 것 같아서 ‘뭐지?’하는 호기심에 집어 들었던 것이 계기가 되었다. 패키징의 양 옆에는 제품디자인에 대해 하나도 모르는 나라도 절대 하지 않을(?) 빼곡한 텍스트가 가득했다. 좀 더 세련된 디자인을 해도 모자랄 판에, 왜 이런 무모한(?) 시도를 한 것일까 했던 나의 오해는 그것이 오틀리 특유의 마케팅 전략이라는 것을 알게 된 후에 풀릴 수 있었다. 그 전략은 4년 전이나 지금이나 유효한데, 텍스트는 주기적으로 바뀌지만 ‘뭐, 우리도 당신이 이걸 다 읽을 거라 기대하진 않아’라고 자조적인 웃음을 띄는 특유의 태도는 여전한 것 같다. 그러나 겉보기에 세련된 디자인 전략은 아닐지라도, 기업이 제품을 통해 추구하는 핵심 가치를 전달하는 일에만은 소홀하지 않았던 오틀리의 진심이 통했는지 지금은 무서운 속도로 성장해 세계 각국에 진출하는 규모 있는 회사가 되었다. (오틀리가 모교인 룬드 대학교 학생의 창업 아이디어를 통해 탄생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그래서인지 본사도 룬드와 기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말뫼(Malmö)에 있다.)
▲ 매장에 진열되어 있는 오틀리 제품들. 워낙 식물성 음료의 종류가 다양하게 판매되고 있는 스웨덴이지만, 특유의 디자인으로 많은 제품들 가운데서도 한 눈에 들어오는 것이 특징이다.
▲ 오틀리 제품 양 옆을 가득 채우고 있는 위트 있는 메시지. 장난인 듯 하면서도, 본인들이 추구하는 기업가치를 가볍게 잘 풀어놓은 메시지들이 많다. “The oats are the future. What you are doing is right.” 이라는 문구가 인상적이다.
▲ 4년 전 교환학생 당시 코리도 (Corridor) 메이트들과 공유했던 내 냉장고. 오른쪽 락토스 프리 (Lactose Free) 우유와 오틀리가 보인다. 그 때는 우유도 번갈아 가며 마셨던 것 같은데, 지금은 거의 오틀리만 마시게 되었다.[/caption]
▲ 작년 여름 스톡홀름 중앙역에 설치되어있던 오틀리 아이스크림의 옥외광고. ‘이렇게 맛있는 귀리 초콜릿 퍼지 아이스크림이 있는데, 그 누가 해변에서의 몸매를 신경 쓰겠어?’라는 뉘앙스가 담긴 광고 문구를 보고 ‘참 오틀리스럽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업의 핵심 가치를 제품 디자인을 통해 드러내는 오틀리를 계기로 스웨덴에서 판매되는 제품 디자인을 눈 여겨 보기 시작한 나에게 또 다른 깊은 인상을 남긴 것은 바로 패키징에도 스며들어있는 ‘친환경적 지속가능성 (Eco-friendly sustainability)’였다. 유제품류가 종이 패키징을 사용하는 것이야 우리 나라에서도 흔하다지만, 스웨덴의 슈퍼마켓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플라스틱으로 포장되는 것이 당연했던 제품들도 종이재질의 포장을 사용하고 있는 것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어쨌든 패키징 자체가 불필요한 쓰레기를 만들어 내는 것이라는 비판이 있을 수 있지만, 부득이하게 사용해야 하는 것이라면 보다 환경에 이로운 방법으로 포장재를 선택하고 있는 많은 회사의 제품들을 보면서 제품 디자인에 담겨 있는 디자인 그 이상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었다.
▲ 간단하게 휴대하기 좋은 다양한 오틀리 제품들. 한 손에 들어오는 일반적인 알루미늄 캔 사이즈의 제품들이지만, 모두 종이재질의 패키징을 사용하였다는 점이 매우 인상 깊었다. 제품을 개봉하는 윗면에 “Shake me!”라는 특유의 위트 있는 문구가 보인다.
▲ 종이 패키징을 이용하고 있는 다양한 제품들. 밀가루, 설탕부터 시작해서 파스타 소스, 그래놀라, 스웨덴에서 즐겨 먹는 다양한 씬 브레드 (Thin bread) 제품들도 모두 종이 재질의 패키지에 담겨 판매되는 모습을 흔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식품 제품 디자인에 환경 보호를 위한 보다 적극적인 정책이 녹아있는 예로 ‘Pant 제도’를 들 수 있다. Pant는 스웨덴어로 캔(can)과 PET 병에 부과된 ‘보증금’을 의미한다. 소비자가 제품을 구매할 때 보증금이 포함된 가격을 지불하고, 재활용을 통해 다시 돌려 받는 시스템인 것이다. ICA, COOP과 같은 슈퍼마켓 입구에는 이 캔과 플라스틱 병들을 반납하고 보증금을 환불할 수 있는 기계들이 설치되어 있다. 소비자들은 Pant를 위해 바코드가 훼손되지 않은 온전한 캔과 병을 가져가서 그 금액을 기부하거나 영수증의 형태로 돌려받을 수 있는데, 이것은 보증금을 환불 받은 해당 매장에서 현금으로 교환하거나 물건을 구매할 때 현금처럼 사용이 가능하다.
▲ 기숙사 근처 슈퍼마켓 내부에 위치한 Pant 기계. 이 곳에서 알루미늄 캔과 페트병을 반납하고 보증금을 영수증 형태로 돌려받을 수 있다.
▲ 슈퍼에서 흔히 구매할 수 있는 음료수 혹은 생수통의 겉면을 확인해 보면 ‘Pant’라고 적힌 로고를 확인할 수 있는데, 일반적으로 1 스웨덴 크로나, 크기가 큰 제품의 경우에는 2 스웨덴 크로나의 보증금이 매겨져 있다.
▲ Pant 로고가 박힌 재활용 가능한 알루미늄 캔과 페트병들
스웨덴은 1984년 처음으로 알루미늄 캔에 대해 Pant 제도를 도입했다. 도입 30년이 넘은 현재 캔과 페트병의 수거는 정부의 법령과 관리감독 하에 Returpack Svenska AB라는 사기업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각 슈퍼마켓에서 수거된 공병들은 모두 노르셰핑(Norrköping)에 있는 재활용 시설에 보내져 새로운 캔과 병으로 재 탄생하게 된다. 정부가 설정한 재활용 비율은 Pant 조건에 부합하는 전체 캔과 병의 90퍼센트이다. 작년 2017년에는 개인이 연간 약 183개의 캔과 병을 재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직 정부의 목표치인 90퍼센트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Pant 제도의 정착으로 상당히 높은 비율의 재활용 비율과 함께 대다수의 국민이 제대로 이해하고 함께하는 성공적인 정책운영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슈퍼마켓에서는 빈 캔과 병이 가득 들어있는 봉지를 들고 무인 회수기 앞에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을 흔치 않게 볼 수 있다. 스웨덴뿐 아니라 노르웨이, 독일, 덴마크 등에서 시행하고 있는 이 제도는 이미 일상 속에 정착되어 자연스럽게 국민들의 재활용 참여율을 높이는 데 일조하고 있다.
식제품 디자인부터 Pant까지, 가장 가까운 일상에서 경험할 수 있는 작고 사소한 것들에도 단순히 디자인을 넘어 더 큰 가치를 추구하고자 하는 노력이 엿보이는 이 곳에 살고 있음이 문득 고맙게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다. 강의실에서 배우는 학문적인 배움도 물론 의미가 있지만, 생활 속에서 엿보이는 스웨덴의 생활 양식과 다양한 가치들을 마주하는 순간들 또한 유학생활을 통해 앞으로의 내 삶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될 소중한 순간들임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스웨덴의 유명한 디자인은 단순히 시각적인 즐거움을 줄 뿐만 아니라 그 속에 담긴 디자인 이상의 디자인을 만들어 내기 위한 노력이 깨달아질 때 더 빛이 나는 것 같다.
최신 댓글